Building Bridge of LOVE

이과수 선언의 선교학적 의의 본문

세계를품은그리스도인/- Send

이과수 선언의 선교학적 의의

discipler 2007. 5. 11. 00:47
아래의 글은 "이과수 선언"에 대해 침신대에서 섬기는 이현모교수가 '이과수 선언의 선교학적 의의'라는 제목으로 쓴 글인데 이과수 선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라서 스크랩을 했다. 주의 깊게 읽어보면 앞으로 복음주의 선교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몇몇 부분은 읽기가 쉽도록 재구성했음을 밝혀둔다.

이과수 선언의 선교학적 의의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9년은 20세기를 마감하는 해이기도 하고 역사적인 로잔 선언문이 발표되어진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세계복음주의 협의회(WEF; World Evangelical Fellowship)의 선교분과위원회(Missions Commission)가 지난 1999년 10월 10일에서 15일까지 브라질의 이과수 市에서 개최한 이과수 선교 협의회(Iguassu Missiological Consultation)는 위에 언급된 독특한 두 가지 시기적 의미에서 출발하였다고 하겠다.

20세기는 교회역사에서 유래가 없었던 격동의 시기였다. 19세기 산업혁명의 결과로 인간의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천년왕국의 도래까지를 기대하는 장미 빛 희망 속에서 시작되어진 20세기는 곧 이어진 2번의 세계대전을 통해서 인간의 잔인함과 비극적 죄의 속성을 통감시켰다.

신학적으로는 초기의 후천년설이 자취를 감추고 하나님의 전권적인 간섭을 기대하는 전천년설로 급격한 전이를 경험하였다.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면서 세계 복음화의 과업을 가속시키기 위해서 모인 에딘버러 세계 선교 대회는 수많은 긍정적 영향을 남기면서도 자유주의 신학의 분위기를 용납하기 시작함으로서 선교계는 이후 에큐메니칼 그룹과 복음주의 그룹 두 진영으로 나누어져서 치열한 대립의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에큐메니칼 그룹은 해방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새로운 목소리를 십분 받아들여서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영혼의 구원으로부터 사회적, 정치적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방향으로 변질시켰다.

특히 1960-70년대에 걸쳐서 에큐메니칼 그룹은 교회의 기존 전통과 사명에 대하여서 혁명적인 도전을 계속하였었다. 이러한 갈등의 요소 속에서도 20세기는 성령의 역사가 2000년 교회역사 중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랍게 역사(役事)한 시기였다.

20세기 들어서서 전세계 인구는 백년만에 3.7배가 증가하였다. 예수님 당시에는 전세계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는데 1200년이 걸렸음을 기억할 때 한 세기안에 인구가 3.7배로 늘어난다는 것은 가히 폭발적인 증가이다. 오늘날의 인구성장율은 기하적 증가를 넘어서서 거의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현대의 선교학자들은 오늘날 인구성장율을 기독교 선교가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상당히 회의적이다. 그러나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에 기독교 선교는 그 엄청난 인구성장율을 따라 잡았었다. 100년 전 전세계 그리스도인의 비율이 33%를 기록하였었는데 20세기를 마치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33%을 유지하고 있다. 교회역사상 비율적으로는 초기 500년이 가장 커다란 부흥의 시기라고 지적하지만 실제 그리스도에게 돌아온 사람들의 숫자를 본다면 2000년 교회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부흥의 시기는 20세기였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 부흥의 속도는 가속되어지고 있다. 이는 성령의 역사와 동시에 로잔 선언문을 통한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정립, 그리고 그 결과로 이어진 제2/3세계 선교의 발흥 등과 관련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시기였던 20세기를 마치고 새로운 21세기의 문을 여는 시점에서 복음주의 교회들 간의 선교신학적 관점을 다시 점검하여 볼 필요가 이번 이과수 협의회를 개최하게 한 주요 동인의 하나였다. 또한 이는 로잔 선언문(Lausanne Covenant)이 발표되어진지 25년이 된 시점이었다. 로잔 세계선교대회는 에큐메니칼 그룹의 새로운 선교 개념에 대항하여서 복음주의 교회의 선교신학을 정립한 대회였다. 이 로잔 대회의 열매인 로잔 선언문이 복음주의 교회들의 선교신학과 실제적 선교열매에 기여한 것은 기념비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로잔 위원회는 1974년 대회 이후로 다양한 선교신학 관련 주제들에 대한 협의회(consultation)를 개최하면서 다양한 주제의 선교 이슈들에 대한 신학적 관점을 확립시켜 나갔다. 그러나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되어진 로잔 II는 사람들의 기대에 비하여서 과히 생산적인 새로운 신학의 발전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이후 로잔 위원회 지도력의 약화가 로잔 위원회의 신학적 활동을 위축시키게 되었다. 더욱이 1990년대에는 전 세계적 부흥에 발맞추어서 복음주의 선교학계는 신학적인 논쟁보다는 선교 전략적 관심에 더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공격적인 기조가 90년대에 누그러진 것도 신학적 논쟁을 약화시킨 원인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서 로잔 선언문 발표 25주년을 맞이하면서 복음주의 선교학계에서는 그동안의 복음주의 선교학을 재평가하여보고 새로운 세기에 필요한 선교신학적 발전의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절실하게 대두되었다. 이러한 요인이 또 다른 이과수 협의회를 모이게 한 원인이 되었다.

이번 이과수 협의회에는 53개국으로부터 160명의 선교학자들이 참석하였다. 이과수 폭포는 1986년에 제작된 영화 "mission"의 배경이 되는 곳이고 이 영화의 내용대로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을 폴츄칼 정복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희생되어진 지역이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서구 문화를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에 반대하면서 과감한 문화수용(accommodation) 정책을 편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과수 대회가 선교신학과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의견들이 제기되어질 것인가를 기대하기도 하였지만 실제 대회는 주로 현재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흐름에 대한 재조명과 비평, 그리고 포스트모던니즘의 영향이 복음주의 선교에 미치는 다원적 영향 등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 대회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들은 네가지로 요약되어질 수 있다.

매일 아침에 계속되어진 아지스 페르난도 (Ajith Fernando)의 강해설교를 통해 제시된 삼위일체 중심의 성경적 선교신학, 런던의 All Nations Christian College 학장인 크리스 라이트 (Chris Wright)의 다원적 현실에 대한 선교적 대안, 사무엘 에스코바르(Samuel Escobar)에 의해서 제시된 복음주의 선교신학에 대한 평가, 그리고 폴 히버트 (Paul Hiebert)에 의해서 제시된 영적전쟁과 성경적 세계관의 문제 등이다. 이들을 주제별로 간략하게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복음주의 선교신학에서 다음 세기에 필요로 제시되어진 것은 선교신학의 성경적 기초가 새롭게 연구되어질 필요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물론 복음주의의 특성 자체가 성경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막연하게 사람들은 복음주의 선교신학은 당연히 성경에 근거하였다고 보지만 실제 심층적인 차원에서 성경적 기초가 취약함이 지적되어졌다. 특별히 성경적 삼위일체론에 근거한 선교신학의 재정립이 중요한 이슈로 제시되어졌다.

2) 다음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오늘날 기독교에 주는 가장 커다란 도전으로서 다원주의 혹은 다원론적 접근에 대한 문제들이 주요 과제로 등장하였다. 크리스 라이트는 세가지 다원론적 접근의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이들은 해석학적인 다원론의 문제, 종교적 다원주의, 그리고 윤리적 다원주의의 문제 등이었다. 종교적 다원주의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언급들이 있었지만 21세기에 들어가서 선교적 차원에 가장 커다란 장애는 역시 이 다원주의 문제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종교신학에 대한 복음주의적 견해가 분명하게 제시되어져야 할 것이다. 해석학적 다원론의 문제는 문화에 대한 이해에 따라서 제기되어지고 있는 문제이다. 역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커지면서 윤리적 다원주의는 지금까지의 복음주의의 획일적인 윤리관에 커다란 도전이 되어지고 있다. 윤리가 문화적 상황에 관계없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 주제도 앞으로의 선교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과제로 부각되어졌다.

3) 가장 커다란 관심을 모은 것은 역시 복음주의 선교신학에 대한 평가 부분이었다. 핵심적인 주제로 에스코바르는 로잔 이후의 복음주의 선교신학을 크게 3가지 부류로 나누었다.

후기 제국주의적 선교학 (post-imperial missiology)은 유럽과 영국의 복음주의 그룹에 의해서 형성되어진 선교학의 흐름이다. 이는 제국주의가 지배적이었던 시대는 이제 지났음을 선포하면서 선교에서 유럽교회의 영향은 기울어지고 있으며 제삼세계 교회들의 기독교가 새로운 형태를 형성하고 있음을 인식하여서 형성되어지는 선교학이다. 이 선교학은 세가지 방향으로 선교학의 과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첫째로는 현재 진행되어지는 선교활동들을 평가하고 정정하기 위해서 성서적 패턴에 새로운 연구를 행하는 것과 둘째로는 서구 제국주의적 개념에서 이루어진 선교 역사에 대하여서 비판적인 저작과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서구교회와 제삼세계 교회가 상호 동반자의 입장에서 미래의 선교를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재구성해 보는 작업이다. 많은 복음주의 선교단체들이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두 번재 부류는 경영적 선교학 (managerial missiology)이라고 이름을 부친 선교학의 흐름인데 이는 주로 풀러 신학교와 교회성장학파, 기독교 21세기 운동 등의 신학적 흐름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흐름은 지난 50여년동안 공헌한 면도 적지않음을 인정하지만 성경적 세계관 보다는 일반 사회의 경영학적 개념, 시장경제 개념에서 유래되어진 세계관이 너무 지배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숫자나 가시적 성과 등에 치중하면서 깊이있는 성경적 제자 훈련과 연단 등의 면이 간과되어졌다는 평가였다.

세 번째 부류는 소외된 자들의 비판적 선교학 (a critical missiology from the periphery)이다. 이는 올란도 코스타스 라든지 르네 파딜랴 등의 선교신학의 흐름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을 넓은 개념에서 함께 수용하는 선교적 흐름을 가르친다.

결론적으로는 이러한 세 흐름에 있어서 성경적 삼위일체의 개념을 중심으로 새로운 반성들이 요구되어진다는 것이다.

4) 폴 히버트는 최근 선교사역에서 점차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가고 있는 영적전쟁의 개념이 성경적인가라는 독특한 주제를 다루었다. 이는 선교계에서 시기적으로 중요한 주제였다. 결론적으로 히버트는 최근 주장되어지는 영적전쟁의 개념이 성경적 세계관에 근거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비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유래되어졌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는 경계하여야 할 문제라는 것이 결론이다.

이과수 선언문은 로잔 선언문에 비해서는 획기적인 선교신학을 제시하지는 못하였다고 보인다. 오히려 복음주의 선교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려는 시도였다고 보는 것이 의의라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이 선언문이 장차 선교학계에 미칠 영향은 단기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추후 이 선언문의 방향성에 따른 복음주의 선교학자들의 연구에 따라서 달라질 것으로 장기적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160여명의 복음주의 학자들이 모여서 겸손과 용납의 정신으로 어려운 난제들을 함께 평가하여보고 방향성을 제시한 선언문 작성에 성공한 것은 복음주의 선교신학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업이었다고 평가하여야 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