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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태국 세계복음주의연맹 선교위원회 총회를 다녀와서

discipler 2009. 2. 5. 20:01
이 글은 한국글로벌리더십연구원(GLF)의 원장이신 이태웅목사님께서 2008년 WEA MC 총회에 다녀 오신 후에 쓰신 글입니다. 변진석 원장님이 쓰신 이전의 글과 비교하여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08 태국 세계복음주의연맹 선교위원회 총회를 다녀와서
-범세계선교운동 중심으로 본 선교-                           

세계복음주의연맹 선교위원회와 범세계선교운동의 배경

WEA Mission Commission(세계복음주의연맹 선교위원회) 총회는 매 3년마다 열린다. 이번에는 태국 파타야에서 열렸다. 약 250여명의 실천적 선교전문가들(Reflective Practitioners)이 세계 각국 각 대륙과 각 나라에서 참가하였다. 세계 경제사정으로 보아서나 태국 국내의 정치 상황으로 보아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기가 힘이 든 경우인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것은 이번 대회에서 다룰 소재가 그만큼 중요하고 더 나아가서 이들이 실천적 선교전문가들이였기 때문에 다소의 어려운 요소들을 무릅쓰고 다수가 참석하였던 것으로 본다.

이번 대회에 대한 배경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범세계 차원의 현대선교운동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하기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하여 범세계선교운동에 대하여 보다 큰 그림을 먼저 그리고, 그 다음 이번 대회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것이 옳은 순서라고 생각된다.

현대선교 역사상 범세계 선교대회는 첫 번째 에딘버러 1910년 대회를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다. 물론 그 당시 참석자들은 대부분 서구교회에서 왔었다. 하지만 이 대회이후 몇 갈래로 중요 선교운동이 생겨났다. 그 이후에 나타난 범세계선교운동은 크게 다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에큐메니칼 진영에서의 범세계 차원의 선교운동이 있다. 현대선교신학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한 국제선교협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IMC) 창립을 빼놓을 수 없다. 1921년 예루살렘에서 창립된 이 운동을 통하여 이것이 1961년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WCC)와 합병되기까지 IMC는 꾸준히 선교신학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소위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이 그 모습을 들어내기 까지는 이 운동이 여러 차례 선교대회를 개최하면서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였다.

이 운동은 1961년에 WCC와 합병이 되었다. 1952년에 열린 IMC 대회에서 선교는 교회의 본질에 속한다는 주장에 따라서 이 둘은 합병되었고, IMC는 WCC의 전도와 선교분과위원회(Commission for World Mission and Evangelism-CWME)로 명실공이 교회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후로는 주로 WCC 운동을 통하여 선교를 포함한 다양한 신학적 소재들이 다루어졌다.

둘째로, 복음주의 선교운동의 경우 1846년 10개국에서 온 800명이 런던에서 모여서 만든 연맹을 모체로 하여 1951년에는 21개국의 대표들이 모여서 현 세계복음주의 협의회(World Evangelical Fellowship-WEF)를 재 창립하였다. 2001년에는 세계복음주의 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e-WEA)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세계복음주의연맹 선교위원회(WEA Mission Commission)는 WEA의 여섯 개의 위원회 중에 하나이다. 과거 20년간 복음주의자들이 함께 모여서 선교훈련, 멤버케어, 파트너십 등 다양한 선교에 관한 주제들을 다룸으로써 범세계선교에 기여한바 있다.

또 하나의 복음주의자들의 선교운동은 소위 로잔운동을 통하여 나왔다.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처음으로 범세계차원의 대회를 열었다. 이때 복음주의자들은 로잔언약을 작성하였고, 지금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복음주의자들이 선교활동이나 일반 교회활동에 있어서 로잔언약을 그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 대회는 지금까지 1989년에 마닐라에서 2차 대회를 가졌고, 앞으로 2010년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1910년 에딘버러 대회 100주년 기념 겸 제 3차 대회를 갖는다. (website: www.Lausaane.org 에는 1974년부터 지금까지 열렸던 모든 대회와 문서들이 데이타베이스화 되었음)

1989년부터 2001년까지 있었던 AD 2000 and Beyond 운동은 로잔 2차 대회 이후 탄생하여 십여 년 간 활동을 하고 그 수명을 다하였다. 따라서 현재 살아있는 범세계적인 선교운동은 WCC/CWME, 로잔운동 그리고 WEA Mission Commission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번에 태국에서 열린 대회는 WEA 총회와 연이어서 10월 30일부터 11월 4일 사이에 열린 WEA Mission Commission 총회이다. (Website: www.worldevangelicals.org  www.connections.com 여기에는 지금까지 나온 모든 Connection 저널이 database화 되었고, 그 외에도 Mission Commission Resource란에는 지난 20여년간 WEA Mission Commission에서 출판된 모든 책들이 다 들어있다.)   
 

WEA Mission Commission 대회의 구성

주제: 대회는 오전과 저녁시간에 전체 집회 중 주제 강의 및 패널이 있었다. 주제 강의와 패널에는 다음 제목들을 다뤘다: 글로벌교회의 위기, 고난과 핍박을 받는 중에서의 선교, 상황화의 재론(Contextualization Revisited), 영성과 선교 그리고 예술과 선교 등이 그 주제들이다.

네트워크(Network) 와 태스크포스(Task Forces): WEA Mission Commission에는 다음과 같은 Network와 Task Force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오후시간에 모여서 전체집회에서 다룬 주제를 가지고 자신들이 소속된 그룹에서 이 주제를 적용시키는 형식으로 다루어졌다. 이들은 각각 자신들의 전문분야에서 이것을 상시 운영하고 연구하고 있다. 이런 대회에서는 그들이 연구하는 주제들이 자신들의 분야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다루게 된다. 이들의 website들을 방문하면 그들 분야의 수없이 많은 전문 자료들을 찾아 볼 수 있다.

-Network (상설기구로서 범세계적으로 선교사 멤버케어를 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1. Global Member Care Network(GMCN-Website: www.membercare.org 와 관련 사이트들)
2. International Missionary Training Network (IMTN-Website:  www.imtn.org에는 많은 선교훈련에 관한 자료와 Training 이라는 저널의 지난 호들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resource란에는 다른 WEA Mission Commission 책들이 들어 있다.)
3. National Mission Movements Network (NMMN)
4. Ethne and Sealink (Website: www.ethne.net)
5. Tentmakers International (TI-Website: Tentmakers International)
6. Refugee Highway Partnership (RHP-Website: Refugee Highway Partnership에는 각종 난민에 대한 정보가 있다.)


-Task Force (소정의 task를 위하여 모이는 working group으로서 소정의 목표가 달성되면 해산하거나 Network으로 발전할 수 있다.)

1. Global Missiology
2. Mission Mobilisation
3. Joint Information Management Initiative(JIMI)
4. Younger Missional Leaders
5. Mission and Arts


주제 강의 내용들

1. 범세계 복음주의교회의 위기(The Crisis of the Global Evangelical Church in Mission by Dr. Bill Taylor)

Bill Taylor 박사는 복음주의 교회 자체의 위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첫째로 교회는 총체적인 변화를 위한 제자도 과정을 이루어 나아가는데 실패하였다. 이런 변화의 과정은 Paul Hiebert의 최근 저서인 Transforming Worldview (Grand Rapids: Baker, 2008)에서 지적한 것처럼 세 차원에서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가장 깊은 세계관의 차원과 표면적인 차원과 그 중간 레벨인 신념의 차원 모두가 변화를 해야 비로소 신구약에서 말하고 있는 성숙한 교회가 될 수 있다. 현대 복음주의 교회의 위기는 표면적인 차원의 변화만 경험하고 더 깊은 세계관 차원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위기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백성은 역사적으로 볼 때에 깊은 변화를 경험하였다. 골로새서에 나타난 영성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주님을 믿은지 얼마 되지 않은 골로새 교인을 향하여 쓴 바울 사도의 편지 내용은 그 당시 교회가 얼마나 깊은 변화를 경험하였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이에 비하여 범세계복음주의 교회는 표면적으로만 기독교인이지 더 깊은 차원에서는 아직도 혼합주의와 세속주의의 덫에 막혀 성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곧 선교의 쇠퇴로 이어진다.

셋째로 범세계복음주의 교회는 다시 한 번 Paul Hiebert 박사가 주장하는 더 깊은 세계관 차원의 변화를 경험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범세계교회에 알림으로써 도전해야 한다. 현대의 위기는 바로 이런 교회의 빈약한 영성으로부터 기인된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은 도전은 한국교회에도 해당된다.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떤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Paul Hiebert 박사가 임종 직전에 세계교회를 향하여 도전한 더 깊은 세계관 차원의 변화에 비추어봤을 때 과연 어떠한가? 과연 어느 정도의 영성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이 메시지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는 범세계 교회를 향한 예언자적인 메시지이자 한국교회와 선교계를 향한 도전이기도 하다. 첫 주제 강의는 범세계 차원에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 제시를 하였다.

2. 예술과 선교(David Taylor 외)

우리는 예술을 선교나 기독교 사역과의 관계 가운데서 아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기가 일수이다. 하지만 더 세밀하게 살펴볼 때에 우리가 하는 사역 중에 는 예술적인 면을 거의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예술은 우리의 사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타문화권 선교에 있어서 더 더욱 그렇다. 개교회의 사역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관점을 고려하여 앞으로 우리가 하는 사역에 지금보다 더 예술적인 면을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한국 선교사들에게는 이런 메시지가 생소하게 들릴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영성과 예술을 구분하였고, 이 둘 사이에 어떻게 조화가 이뤄져야 되는가를 깊이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면밀하게 검토하여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먼저 예술을 활용하신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각종 아름다운 것들을 부각시키셨다. 비록 타락하였지만 이 세계 가운데는 자연의 절경과 아울러 절묘한 예술성을 자랑하는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인간 자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인간만큼 더 예술적인 존재는 없을 것이다. 결국 예술은 우리의 본질 속에 내재 되어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복음을 전하는데도 이런 인간의 성향을 백분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한국 선교사들이 이제부터라도 보다 더 현지 예술에 대한 감각을 익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데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상생활 가운데도 이를 적용시켜야 하겠다.

3. 고난과 핍박 중에서의 선교

주제 강의 중에 이 내용만큼 우리 마음에 도전을 준 것은 없을 것이다. 특히 두 가지 면에서 도전이 되었다.

첫째는 그렇게 많은 핍박과 고난이 21세기 현재에 범세계교회 구석구석마다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이슬람권과 힌두교권이 기독교와 맞서서 대결하고 있는 상황 중에 있는 교회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언제 이런 고난이 우리에게 찾아올지 모른다는 점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발생하는 미증유의 자연재해 내지는 HID/AIDS와 같은 불치병의 확산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기아와 정치적 압박으로 난민의 신분이 되는 일도 확산일로에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집중적인 핍박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Hot spots)만 해도 80여국이나 된다. 이런 지역에서는 단순히 기독교인이라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핍박을 받게 된다. 순교도 다반사처럼 일어나고 있다.  

둘째는 이런 극한 상황에서 과거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스케일의 교회성장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아랍세계라 하면 아라비아반도와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을 지칭한다. 어떤 아랍지역은 일세기 경부터 기독교가 존재하였다. 7세기에 이르러서는 이런 지역 중에 기독교가 사라진 지역도 많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이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반도에서 기독교가 새롭게 자라고 있다는 점이다. 아랍지역에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강화되면 될수록 기독교도 강인해지며 그 속에서 뿌리를 내리며 자라고 있다. A국이 한 좋은 예이다. 그 곳에서 기독교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선교사 파송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스크는 어떤가? 엄청나게 크다. 사역의 열매는 어떤가? 경우에 따라서는 30년 사역을 한 결과가 불과 7명에게 세례를 주는데 그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는 최근 부흥이 일어나기도 한다. B국에서는 2007년만 해도 18개 교회가 문을 닫았고, 수백 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 행방이 묘연하다. 그러나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이 지역 성도들은 담대해지고 두려워하지 않고 전도를 하고 있다. 이로써 교회도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교훈을 얻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이들 고난 받는 교회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어야 한다. 거기에서 그치지 말고 세계 모든 교회는 언제 그들에게 닥칠지 모르는 고난에 대비하여 가르치고 훈련하여 성도들을 미리 준비를 시켜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언제 어떻게 그 상황이 변하여 고난과 핍박이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메시지를 들으면서 과연 우리 한국 교회는 어떤 상태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야말로 가장 고난을 많이 받은 교회 중에 하나이고, 1000명이상의 교회지도자들이 불과 50여 년 전에 순교한 나라이다. 지금도 북한은 언제 어떻게 도발할지 모르며 이제는 핵무기까지 제조하여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의 준비상태나 고난에 대한 대비책은 어떤가? 우리는 심히 근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메시지가 우리 교회에나 선교지 교회에나 선교사들에게 경각심을 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언제 다가올지도 모르는 고난에 대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다.      

4. 상황화에 대한 재론(Contextualization Revisited)

선교역사적으로 볼 때에 상황화는 이미 구약과 신약시대에 이뤄졌다. 성경은 상황화된 문서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하시고자하는 메시지를 대상에 맞게끔 전하시어 이를 통해 듣는 이들로 하여금 반응을 일으키게 하셨다. 아브라함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칠십 평생 살던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저 없이 떠날 정도로 메시지는 정확하였고, 감정과 의지와 행동 모두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정도였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케이스 스토리를 빼 놓을 수 없다. 사마리아 여인, 니고데모, 38년 된 병자 등 수없이 많은 경우마다 상황화를 하여 메시지를 전하셨다. 초대교회만 해도 Pax Romana(로마제국이 만든 도로 등 헬레니즘으로 나타난 동질성)를 잘 활용하였으므로 상황화 문제를 비교적 잘 해결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유럽에 기독교가 정착하여 새로운 기독교 문화가 정착 된 후부터 심각한 선교적 문제가 제기 되었다. 간간이 (enculturation, accommodation 등) 문화에 동화되는 선교사들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상황화를 한 선교방법으로 체계화 시킨 것은 20세기 중반이다. 정확히 이야기해서 1958년 윗비 IMC 대회에서 신학기금(Theological Education Fund-TEF)을 조성하여 3차에 걸친 연구 끝에 1972년에 상황화라는 개념을 신학교육에 도입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복음주의자들은 1974년에 개최된 로잔 제 일차대회에 상황화 개념을 도입하였으나 이것이 보다 넓게 보급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이다. 과거 30여년간은 상황화의 개념을 모르면 선교를 모른다고 할 정도로 이 이론은 선교계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게 되었는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론 그 자체를 한 번 더 집고 넘어갈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성서적, 신학적, 선교학적으로 이를 재조명 해 보는 것이 앞으로의 선교활동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본다. 다른 선교 이론들은 한 때에 반짝했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퇴색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화의 경우는 좀 다르다. 오히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더 중요시 되는 경향이 있다.

둘째로, 우리가 상황화를 하는 과정 중에 반드시 고수해야 할 경계를 더 확실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달라스 신학교 선교학교수인 Mark Young 박사는 상황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상황화가 중요하지만 상황화의 목적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어서 성경은 우주적인 역사이며, 역사는 변경될 수 없고, 그 내용은 사실이라고 했다. 이런 전제하에 우리가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의 발표자인 Dr. Barbra Burns는 상황화의 기본이 되는 개념들을 다시 한 번 논하였다. 상황화의 역사, 상황화 과정을 위한 콘센서스의 필요성을 주장한 후에 성서적인 상황화를 제시하였다. 콘센서스가 이뤄져야 할 부분으로 그는 다음 영역을 제시하였다. 성경의 성격, 해석학적 방향, 성경의 역사와 내용, 성경이 말하고 있는 문화의 정의와 복음의 성격이 그런 것들이다.

그의 성서적 상황화는 세단계로 세 가지 레벨 가운데 이뤄진다. 동일시(identification)-대면(confrontation)-변혁(transformation)이 선교사의 삶과 그의 의사전달과정과 사역 안에서 이뤄진다.

Missiology Task Force에서는 상황화에 대하여 주로 케이스 스터디를 다루었다. 이론보다는 실제로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상황화 모델을 찾는데 주력하였다. 일례로서 한국교회의 추도예배는 상황화 된 좋은 케이스 스터디 감이다. 비록 추도예배가 이론적으로는 조상숭배를 대치하는 것으로 입증되었지만 한국교회 교인들이 이를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십여 년 사이이다. 교회가 컨센서스를 이룰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우리가 이를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먼저 우리는 선교현장이나 교회에서 이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상황화를 해야 할 것이다. 보다 더 쉽고 잘 이해되는 말과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신앙생활 전반에 대하여 우리가 익숙한 문화적 표현 방법을 사용하여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에는 우리 고유의 문화가 샤만이즘이나 불교나 유교등과 너무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문화를 염두에 두고 상황화(이경우는 토착화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하는 것은 오히려 성경적인 개념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이제는 그런 역사적 배경의 짐을 벗은 것 같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우리 문화에 적합한 상황화 모델들이 나와야 한다.

그 다음은 상황화 과정을 상습화해야 한다. 앞으로는 한 번 상황화한 것을  지속적으로 상황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현시대에 나타나는 현상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상황화 싸이클이 아주 짧아 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상황화가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교회나 선교사역은 우리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적합하게 느껴지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한국교회는 이런 점에 대하여 필요를 인식하고 눈을 뜨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5. 영성과 선교

린퀴스트 센터(Link Care Center)의 소장인 브랜트 린퀴스트(Brant Lindquist)박사는 선교와 영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영성의 성장을 무시하는 만큼 쓰러질 위험성도 커진다.”

솔직히 말해서 영성은 너무 평범한 주제라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두 가지 면에서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첫째는 영성의 다양성에 대하여서다. 우리는 영성이란 너무 깊어서 감히 정의를 내릴 수 없고 다만 설명만 할 뿐이라는 점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영성이 문화마다 얼마나 다른가와 얼마나 다양한 영성이 존재하는가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는 영성의 정의도 다양할 것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중에 하나는 다음과 같다. “영성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함으로 자유를 누리는 것과, 그와 같은 현실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과의 통합이 이뤄진 상태를 의미한다. 이로써 영성이란 한 문화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 문화에 의하여 깊은 영향을 받는 것이기도 하다.”(Basil Pennington, with Simon Chan in A Dictionary of Asian Christianity)

John Amalraj는 기독교인의 영성이 다음 3가지 방면에서 선교와 연관을 맺는다고 주장하였다.

  1) 기독교의 선교는 우리의 영성의 연장선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우리의 영성의 정상적인 표현이기도하다.
  2) 교회의 영성 때문에 선교가 지속된다.
  3) 선교는 나라들을 향해 진정한 영성에 초대하는 것이다. 이는 곧 그리스도 앞에 복종하는 삶이며,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주로 맞아 서로 교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Golden T. Smith in Evangelical Dictionary of World Missions)

둘째로 놀란 것은 영성의 깊이에 대해서였다. 두 번째로 발표를 맡은 사람은 위클리프 인터내셔널(WBTI)의 대표인 Kirk Franklin이었다. 그는 부모가 선교사이었기 때문에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출생하였고, 자란 것은 파파뉴기니였다. 지금은 호주 출신 아내와 호주에서 살고 있다. 그는 PNG에서 사역을 하면서 여러 번 영적 부흥을 맛보았다. 그의 영성은 선교지민과 서구 선교사들과 성령의 터치를 통하여 형성되었다. 서구 선교사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두 가지를 특징을 가진 영성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나는 상한 심령(brokenness, contrite spirit)이다. 실용주의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서구 선교사들의 영성은 늘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껴왔다. 깊이 면에서 무엇인가 빠져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Kirk의 메시지와 그의 영성에 대하여 경험하면서 그는 상한 마음이 무엇인지 알며 이로써 하나님을 깊이 체험한 경험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 하나는 그가 이런 영성을 합리적이고도 서구적인 방법으로 회중들에게 전달하였다. 이 둘이 함께 아울러져서 표현되었을 때 서구와 비서구 선교사들 모두에게 엄청난 임팩트를 주었다. 다시 말해서 Kirk의 영성은 깊이가 있었으며 그 깊이는 서구와 비서구의 영성이 통합되었을 때 나타난 것이었다고 본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 한국 교회가 배울 것이 많다. 첫째로 우리는 영성이 너무 신비주의적인 쪽으로 기울여지기가 일수이고, 인격적인 면이 소홀히 된 감이 있다. 우리의 영성이 보다 범세계적인 기준에 도달하려면 인격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내적인 체험과 아울러 이 모든 것이 통합(integrate)된 상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루 속히 한국적이면서도 세계교회가 보아도 성경적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영성이 형성되어야할 필요를 절감한다. 이는 필경 우리가 가진 경건적 영성에다 학문적 면을 통합하는 중에 나타날 것이다. 결국 어떤 영성이든지 자신의 문화적 상황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것이 오히려 독특한 영성이 되어 하나님의 영성의 또 다른 한 부분을 보여 주는 방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영성을 위하여 지금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가이다. 우리는 한 때, 비록 신비주의 쪽으로 좀 치우쳤을지 몰라도, 깊은 영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새벽기도, 산기도, 성수주일, 희생적인 헌금 등 어느 민족에게도 뒤지지 않는 영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그 마저 잃어가고 있고 더 통합된 영성은 아예 상상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번 기회를 통하여 다시 한 번 균형 잡히고, 깊이가 있고, 다양성을 이해하는 선교적인 영성을 가져야 할 때가 왔음을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조직 개편과 과거와 미래

대회와 출판사역:

지난 20년간 세계복음주의 연맹 선교위원회는 많은 논의와 연구와 대회를 통하여 세계선교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에 기여하였다. 첫째로 선교사 훈련운동을 펼쳐서 상당한 자료를 축적하였다. 이 분야에서 가장 권위적인 책들을 1989년 이후 최소한 네다섯 권을 저술하였으며, 한 때에는 Training이라는 저널을 통하여 이를 세계선교계에 널리 알렸다. 지금도 이 저널들은 IMTN 엡싸이트에 들어가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선교훈련분야에서는 DACUM Process라는 특수 커리큐롬 형성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선교훈련 철학을 형성하는데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였다.

둘째로는 1996년 영국 All Nation Christian College 캠퍼스에서 열린 제 1차 멤버케어 대회를 통하여 선교사 탈락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 논문 발표와 더불어 멤버케어에 새로운 기원을 마련하였다. 그동안 다음과 같은 책을 출간하여 세계선교계에 기여하였다. 잃어버리기는 소중한 사람들(Too Valuable to Loose, Carey/죠이), 선교사 멤버케어(Doing Member Care Well, Carey/CLC), 최근에 Worth Keeping(선교사의 장수비결, Carey)

셋째로 동반자 선교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또 선교대회를 통하여 서구 선교단체와 비서구 선교단체, 비서구 선교단체와 비서구 선교단체 간에 파트너십을 어떻게 형성하며 어떻게 이를 운영하여야 되는가에 대해서도 공론화하였다. 이 분야 책도 WEA Resource란에 가면 찾을 수 있다. 현재는 바야흐로 파트너십 시대이다. 앞으로는 더욱 더 그런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넷째로, 범세계선교학 분야에 끼친 공헌이 또한 지대하다. 1999년 10월에는 브라질 이과수 폭포가 있는 곳에서 160여명의 선교 지도자들이 모여서 과거 50년간의 선교학의 방향에 대한 평가를 하고 앞으로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어떤 방향으로 선교가 전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회를 가졌다. 그 결실이 범세계선교학 (Global Missiology for the 21st Century, Baker/CLC) 책으로 이어졌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을 번역을 하였다.

다섯째로 몇 년 전부터 Connections이라는 저널을 발간하여 매년 2회씩 내고 있다. 이는 웹싸이트에 들어가면(www.connections.org) 잘 정리 돼 있다. 선교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다.

조직개편:

과거 20년 동안 처음에는 대표와 스텝들 그리고 상임위원회와 회장 등으로 조직이 구성되었다. 이때는 지역적 대표들과 나라 대표들과 선교전문가들이 이 위원회에 위원이 되어 이 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몇 년 전부터는 상임위원회를 확대하여 네트웍 책임자들과 테스크포스 책임자들까지 포함을 시켰다. 이를 글로벌리더십카운실이라(Global Leadership Council)이라고 불렀었다.

이번 파타야에서는 다시 GLC를 축소하고, 지역대표(Regional Mission Movement)로 두 명, 나라 대표 두 명(National Mission Movement), 선교네트웍에서 두 명, 선교전문가 그룹에서 두 명, 그리고 젊은 지도자 대표들 등으로 새롭게 구성하였다. 회장에는 K. Rajendran 박사(인도선교협의회 대표)와 부회장에는 Rose Dowsett(OMF 선교사, 영국)이 종전대로 위임되었고, 대표는 Bertil Ekstrom 스웨덴 출신 브라질 선교사이다.

이밖에 더 자세한 대회 내용은 위에 말한 웹싸이트에 2009년에 초에 올려 질 것이다. Connections July 2008호와 September 2008호에도 대회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저널은 웹사이트를 통하여 구입이 가능하며 정규구독이 웹상에서 쉽게 이뤄질 수 있다.

결론

1. 한국교회와 선교사는 다시 한 번 고난 받는 교회를 깊이 생각하고 우리가 언제 그런 고난을 받을지 모른다는 긴박감을 갖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를 미리 준비시켜야 할 것이다. 선교단체도 이런 점에서는 동일하게 그 멤버들에게 고난을 대비한 훈련을 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2. 한국교회가 앞으로 세계관 차원의 제자도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전도와 선교를 통한 성장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신앙마저 지키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Bill Taylor 박사의 방향성 메시지와 올해 타계한 Paul Hiebert 박사의 유서와 같은 마지막 걸작인 Transforming Worldviews: An Anthropological Understanding of How People Change (Grand Rapids: Baker, 2008)내용을 심각하게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3.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은 날이 갈수록 상황화를 거듭하여 급변하는 세대를 향해 사람들의 필요에 적중시키는 심령을 꿰뚫는 메시지를 계속 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교회와 선교지의 사역은 다시금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더 늦게 전에 우리는 필요한 액션을 취해야만 한다.

4.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의 영성은 한 때 세계를 놀라게 했다. 과연 지금은 어떤가? 선교역사를 보면 한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왕성하게 성장하던 교회가 쇠퇴하는 경우를 찾아 볼 수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중 현재 이슬람이 꽉 잡고 있는 지역 중에는 한 때 기독교가 뿌리를 내렸던 곳이 허다하다. 이들의 운명은 교회의 영성의 운명과 같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영성은 선교를 빼놓고서는 언급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 반세기 동안 선교가 빠진 영성에 대하여 많이 언급을 해 왔고, 지금도 일각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올바른 영성을 회복하고 선교적인 교회와 선교적인 제자들이 되어야만 한다.

5. 우리의 상황화를 너무 단순화 시켜서는 안 된다. 그 과정도 너무 짧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제야말로 한국교회는 진정으로 상황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그동안 상황화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모든 국민이 생활고에 허덕였다. 그러나 이제는 예술을 생각할 여유가 지난 20~30년 사이에 부쩍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상황화는 예술의 영역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심히 아름답게 창조하셨다. 우리가 재창조한 교회도 아름다움을 되찾아야 한다. 이런 면은 선교지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찬양도 더 아름답게, 교회 예배도 더 예술적으로, 인테리어도 가능한 한도 내에서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게 할 수 있는가를 숙고하고 선교전략도 예술을 항상 포함하여 세워야 한다. 이런 것을 통하여 현대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이들에게 기독교는 꼭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점은 한국지도자를 포함한 동아시아인의 활동이 국제무대에서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아마도 이런 무대가 없어도 충분히 할 일이 있고, 힘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아쉬워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문화권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눠줄 의무가 있고, 더 나아가서 우리가 다른 문화권의 지도자들을 통하여 계속 배워야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글로벌 리더들이 나와서 이런 대회에 참여하여 한국교회가 가진 것을 나누기도 하고 다른 교회들로부터 배우는 일이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부디 이글이 이런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by 이태웅(한국글로벌리더십연구원(GLFocus)원장)
GLfocu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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