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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개척선교(Mission Frontiers)란 무엇인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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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개척선교(Mission Frontiers)란 무엇인가?

discipler 2006. 11. 3. 00:48
랄프 윈터 박사(Dr. Ralph D. Winter)는 “선교의 전방개척(mission frontiers)"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선교에 있어서 '전방 개척'이라는 말은 다른 분야에서 사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직도 분명히 보지 못하지만 이미 넘어 갔어야 하는 그 이상의 영역과 한계를 말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부인할 수도 있는 영역이다. 전방개척선교 연구는 미지의 발견과 평가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기존에 알려진 것의 재평가도 포함한다. 그러나 다른 프런티어와는 달리 선교에 있어 전방개척은, 특별히 사도행전 26:18절에,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라고 기록된 말씀처럼 세계의 모든 열방(종족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모든 영역, 아이디어, 그리고 통찰력들을 탐구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랄프 윈터 박사(Dr. Ralph D. Winter)는 최근 펴낸 “선교의 전방개척(Frontiers in Mission)"의 10장 전체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는 전방개척의 영역을 모두 12가지로 구분하여 열거한다.



1.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s): 어떤 집단의 개념으로서 누구도 그들의 언어와 문화로 효과적인 복음전달을 해본적이 없는 집단이다. 즉, 그 집단에 대한 "선교학적인 돌파(missiological breakthrough)"가 아직 일어나 본적이 없는 집단을 의미한다.

2. 대위임령과 아브라함: 창세기 12:1-3, 18:18, 22:18, 26:4, 5, 그리고 28:14, 15 등은 실제적으로 마태복음 28:18-20 절에서 예수께서 전달하신 대위임령을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70인역(헬라어로 된 구약)에 의한 창세기 28:15절은 마태복음 28:20과 매우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3. 미완성 과업에서 완성할 수 있는 과업으로: 모든 남아 있는 미전도 종족들에 대한 “선교학적 돌파”를 얻는 과업은 마쳐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 일은 과도기적인 목표이지만, 최소한 끝을 볼 수 있는 과업이다. 온 세계의 기독교 회중들의 숫자는 남아 있는 미전도종족 숫자에 비교할 때에 500배를 상회한다!

4. 대규모 집단에 대한 실패와 “급진적 상황화"(radical contextualization)의 필요: 예를 들어 일본인과 같은 엄청나게 큰 집단들이 진정 토착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운동을 이루어 본적이 없는데, 우리의 복음전도에 있어서 더욱 급진적인 상황화의 필요를 재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5. 역상황화(Reverse Contextualization): 우리 자신의 전통에 대한 재상황화; 이는 선교사들이 미전도종족 사역에 있어서 그 방법만을 상황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기독교 형식 가운데에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광범위한 문화적인 수용에 대하여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6.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의 재선포: “나라이 임하옵시고, 그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개인들이 구원받는 것 훨씬 이상으로 많은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7. 기독교의 한계를 넘는 일(Beyond Christianity): 선교사들은 그 문화적인 측면에서 훨씬 덜 서구적이고,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다른 (교회) 운동을 연이어 낳을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오늘날 아프리카, 인도, 중국 등지에 그와 같은 수백만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8. 다른 종류의 동원: 선교단체들은 젊은이들이 선교에 동원되기 위하여 그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더욱 일찍 접하게 된다면,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지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변이나 알맞은 대학의 코스를 정하는 데에 조언할 수 있다. 그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에는 그들이 선교로 인도함을 받는다고 느끼던 그렇지 않던 그들은 훨씬 나은 선교사나 평신도가 될 것이다.

9. 트로이 목마? : 기독교 학교나 일반 학교의 책들은 모두 다 매우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다. 교회와 선교 단체들은 학교에서 사용하는 책들을 보강시키고 대조할 수 있는 보충교재들을 개발하기 위해서 함께 일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보충 교재들은 1) 기독교 학교에, 2) 가정학습 교재용으로, 3) 공립학교의 기독교 교육용 교재로, 4) 매우 중요한 것으로, 주일학교 교재로, 5)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이상의 네가지 항목에 속하지는 않지만 교육을 걱정하는) 모든 부모들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10. 목회자 교육에 대한 변혁의 필요: 온 세계의 목회자 훈련을 위한 학교에 젊은이들은 적절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목회를 위한 선택은 사람들이 충분히 성장한 후 그들의 성숙과 리더쉽 은사들이 증명된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서야 올바른 사람들이 훈련을 받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목사가 된 사람들이 은사는 없지만 똑똑하고 잘 훈련을 받는 젊은이가 될 뿐이다. 그 결과는 교회가 그러한 목사들로 부터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전 세계에 걸쳐 신학교들이 올바르지 않은 학생들에게 잘못된 교과과정으로(과학도 없는) 잘못된 학위 명칭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다.

11. 과학이라는 종교(The religion of Science):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권의 계시 “책”을 주셨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첫째로, 성경으로서 당신의 “말씀의 책”이요, 둘째로, 자연이라고 부르는 당신의 “창조의 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어느 하나도 가볍게 다루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러나, 슬픈 현실은 일반적으로 (과학 사회를 이루는) 수백만의 지성인들이 첫째의 책을 얕보고 두번째 것을 연구하며, 수백만의 교회와 선교 지도자들이 첫째 것을 공부하지만 두번째 것은 무시하거나 거부해 버린다. 교회가 자연에 대한 지식을 거부할 때에, 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없을 것이다.

12. 악한 존재에 대한 도전: 우리의 현존하는 신학 전통은 다른 어떤 신학자들 보다도 어거스틴에 의하여 더욱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다. 어거스틴은 마니교(Manichaean)에서 출발하였는데,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철저하게 배격하는 반응을 보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악한 존재(the Evil One)에 대한 언급을 어거스틴이 버렸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저술 가운데에서, 일반적인 네오플라톤 사상 처럼, 모든 것들이 종종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의도들로서 보여진다고 하였다. 어거스틴에게 재난이나 해 그리고 질병을 마주치는 것은 그것들 통하여 선을 이루기 위한 것 뿐만 아니라 어떤 선한 목적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나도록 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신뢰하는 믿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에게 있어서 요점은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돌린다면, 성경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과 사단의 역사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수용하지 않는 것이 되고, 악을 야기시키는 것들과 싸우기 보다는 하나님에 대하여 싸우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죤 칼빈'은 치명적인 병원균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 비록 그가 그것들에 대하여 알았다고 하더라도, 아마도 그는 그것들이 사단에 의하여 고안된 것이라고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치명적인 병원균들에 대하여 그것들과 싸워야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신학이나 그것을 없애기 위한 미션이 없다. 우리는 그저 사람들이 아프도록 방치한 이후, 그것이 낫도록 하는 조처를 취할 뿐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악한 영의 역사를 파괴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선교적 행동강령은 전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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