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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방콕선언

discipler 2007. 5. 10. 00:27
WCC의 에큐메니칼 선교에 있어 탈복음적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 '오늘날의 구원'을 위한 선교대회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선언문을 읽을 때 복음적인 시각을 갖고 바라보아야 한다. 선교신학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1973년에 채택된 방콕선언이다. 더 자세한 사항을 알기를 원하는 분들은 조동진 박사의 아티클을 읽으면 된다.


교회들을 향한 편지

지구상의 모든 대륙들로부터 온 우리는 오늘날의 구원(Salvation Today)이 보장하는 약속들과 동시에 그것이 필요로 하는 요구들을 함께 탐구하기 위해 방콕에서 만났다.

우리는 기대 이상을 얻었다 : 우리는 그것을 즐겁게 그리고 실제로 경험했고, 축하했다. 우리는 이 며칠간의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기를 원하는데, 그것은 두 가지의 집중적인 이유 때문에 매우 풍성한 경험이었다.

1. 이 회의는 대부분의 우리에게 아마도 이전의 그 어떤 회의보다 더 “에큐매니칼”이란 단어의 깊은 이해를 가져다 주었다. 우리 모두는 자유스럽고 참 친교를 확신하는 가운데, 우리의 관심과 고통 희망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 수 있었고 또 표현할 수 있었다. 타협 없이 미래에 대해 도전하면서, 대화가 특히, 국내적 빈부자와 국가간 빈부자 사이에서 솔직했다. 우리는 정교회 참여자들의 수가 작아 좀 더 충분한 에큐매니칼 정신 표현에 장애가 되었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2. 우리는 복음을 함께 공유하고 읽을 때 각 개인과 그룹이 자기의 상황 속에서 복음이 요구하는 바를 분별할 수 있을 때, 복음 속에 담겨진 새롭게 하는 능력을 깨달았다. 그것을 위해 각 사람의 정체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우리의 있는 곳에서 우리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덕을 말로만이 아니라 기도와 노래와 예술로 함께 나누는 것은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유럽, 태평양등지에서 온 우리를 충분히 풍요롭게 했다.

우리의 나눔을 통해 3가지 분명한 결과가 드러났다 :

1. 신학적인 토론을 피하거나 최소화함이 없이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음이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가운데 우리가 만난 터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인격성임이 분명해졌뎌.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분의 부활에서 보여진 그 십자가 구원의 능력을 다 같이 인식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라고 청한다. 우리 자신의 혼란을 넘어, 우리의 가장 복잡한 문제들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사람들의 진정한 호심 속에 표현되는, 단순하면서 포괄적인, 사건들과 세계의 일상적 과정의 놀라운 역전인 그분의 구원을 제공하고 계신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하고자 원하시는 것이 인간 실재의 전체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십자가의 전적인 연약함을 수용하셨기에, ‘모든 능력이 그분에게 주여졌다’. 그분이 최후의 승리를 보여 주시는 마지막 때까지, 우리는 사람들이 참으로 자유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인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수락할 때 마다 그분이 일하고 계시는 것을 안다.

2. 또한 우리의 심판자로서 우리가 만난 그분과대면하여 우리는 그분의 요청의 단호함과 우리가 믿고 있는 바와 행하는 바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의 분명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 자녀들의 모든 영광스러운 자유함’을 약속하는 구원으로 인해 우리는 오늘날 사람들을 억압하는 모든 것, 사람들 내부에 있을 뿐 아니라 사회 속에도 존재하는 죄에 대항하는 노력에 좀 더 온전히 헌신해야 한다.

인종정책, 사회적 불공정, 경제적·정치적 압박 등의 문제들과 인도차이나 전쟁이나 자유를 향한 투쟁에 대한 유혈진압이라는 비극적인 부그러움, 기술 문명의 비인간화와 인류의 미래에 대해 그것이 제기하는 위협등, 이 모든 것들이 기독교도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tm도의 구원을 행동으로 표현하도록 절박하게 도전한다.

신앙과 삶의 일치라는 면에서 그리스도의 해방시키는 힘에의 이 필연적인 복종은 그것이 수행되어야하는 상황의 분석을 동반해야만 한다. 이런 영역 내에서의 교회의 타협들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힘의 남용적인 잘못된 사용은 솔직히 밝혀지고, 분명히 비난받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통한 결말로 끝맺음을 한 십자가는 우리에게 우리가 얼마나 자주 그 길을 가는 것을 멈추는 가를 인식케 하고, 우리로 비록 그 길이 희생을 초래한다고 할지라도, 기쁘게 다시 걸어가도록 만든다. 그것은 우리로 말로 증거하게 하고 그들도 역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런 저런 신앙의 소유자들이나 이런 저런 신념의 소유자들과도 대화를 시작하도록 강권한다. 차이점들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적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되며,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를 통하여 형제자매로 여겨야 한다.

3. 방콕에서 나눈 경험은 우리의 삶을 부요하게 할 공동적인 삶의 구조를 계속 찾도록 한다. 모든 사람들이 온전한 책임을 지고 온전한 정체성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가 6대주라는 하나의 나누어진 세계에서, 선교에 대한 우리의공통적인 소명에 함께 대응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단지 길의 출발점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숙하고 정직한 관계를 발견하기 위해 우리에게 더 많은 창조적인 상상력을 사용할 것을 요구하는 몇몇 고무적인 실험들의 발전을 인식한다. 이것이 참된 갱신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어떤 고통스러운 결단을 하도록 해야한다.

전통적으로 자원받는 교회들의 완전하고 책임있는 정체성이 더 빨리 심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해, 거기에서 외국 자본들과 직원들의 임시적인 철수가 필요할지 모른다.

보편적 교회의 실재가 삶으로 경험되어야 하는 것은 지역적 차원에서이다. 우리 공동체들에 도전하는 계속 늘어가는 이미 현상을 경함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모든 교회들은 낯선 자들을 교회의 보편성을 명백히 하고 지역 선교에서 그것을 공유하는 형제들과 자매들로 그들의 중심에 받아들이도록 불림을 받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수용하는 것을 배워야하는 보화를 우리 앞에 놓으셨다.

그것은 우리가 글로 쓰는 위대한 희망의 징조 아래에 있다. 우리의 무력함 대문에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겸손 속에서 우리는 ‘ 하나님의 말씀은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과 그것이 구원의 문을 활짝 연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웠다.

오늘날의 구원에 대한 고백


방콕 회의로부터
우리가 이 교제 가운데서 함께 만났을때 우리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기쁨을 경험했고, 서로간의 신앙을 통해서 새로워지고 도전을 받았다.

우리는 우리 주님께 대한 복종에 있어서의 우리들의 실패와 그 분이 우리 앞에 놓으신 길들에 대한 무지를 깊이 인식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갱신을 위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동시에 자유롭게 하는 심오한 회개의 느낌에 의해서 감동받는다.

세상적 문제와 복잡함과 우리의 교회의 구조와 역할에 관한 혼동을 초월해서 우리는 어떤 어둠도 소명시킬 수 없는 빛의 비추임을 본다.

감사와 즐거움으로,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충분성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그분을 이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모든 것의 통치자이신 주님으로 안다.

그분은 개개인에게 모든 악과 죄로부터 하늘과 당의 모든 능력으로부터, 삶과 죽음의 모든 위협으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할 능력을 가지고 오신다.

그 분은 우주의 주인으로 세상에 오시되 가난한 자들과 배고픈 자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지고 무력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오신다. 힘있는 자들과 억압자들에게는 그 분이 심판과 자비로 오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정의가 온 모든 나라에 비취도록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하여 교회 내와 교회를 넘어서 역사하심을 본다.

그분은 사람들을 그의 주권에 대한 결정적이고 개인적인 응답으로 부르는 것과 그것에 의해서 모든 사람이 정의를 알 수 있고, 온전히 인간적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움직임과 사역들에 대한 명백한 헌신을 통해 그의 교회가 그 구원 행위에 참여하도록 부르신다. 현실이 어떠할 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승리에 대한 즐거운 신뢰 속에서 자유와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

주께서 가까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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